오카리나란 이름의 유래

오카리나(ocarina)는 현재 흙피리를 통칭하는 대명사이지만, 그 유래는 이탈리어어인 oca와 rina의 합성어로 볼 수 있습니다.

oca는 goose(거위)를 뜻하며, rina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Emilian-Romagnol)지역의 방언으로, diminutive(아주 작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탈리아어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음.)

그래서 오카리나는 굳이 뜻을 해석하자면 little goose. 즉, 작은 거위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작은 거위라는 의미가 아니라 흙피리를 가리키는 하나의 고유명사로 쓰입니다. 

지금의 오카리나는 처음 제작될 당시 의도적으로 거위나 새를 형상화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럽 등지에 존재했던 간단한 수준의 흙피리를 보다 더 악기적으로 개량을 한 결과물입니다. 이는 미적, 또는 주술적인 면이 적용된 것이 아니라 한 음악가에 의해 음악적인 기능으로 완성된 형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완성된 형태가 마치 거위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Oca Rina라는 별칭이 악기의 이름(Ocarina)이 된 것입니다. 이렇듯 이탈리아에서 오카리나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그 모양을 보고 이름이 생겨났지만 현재에 와서는 형태에 상관없이 흙으로 만든 관악기를 통칭해서 오카리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후, 여럿 흙이 아닌 다양한 재료들로도 제작이 이뤄집니다.


오카리나의 기원과 발전

흙으로 만들어진 악기는 다양한 오랜 문명에서 여러 형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운지구멍이 아예 없는 것부터 6개정도가 있는 것까지, 특수 효과 소리를 내기 위한 것부터, 연주를 위한 것까지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종류가 다양한 형상을 지닌 것으로 보아 미학적인 의미와 더불어 주술적인 의미가 크게 반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현재의 콜롬비아와 멕시코가 위치한 지역인 중남미에서 만들어진 이러한 흙피리가 스페인 등에 의해 문명이 정복되면서 아즈텍의 흙피리가 유럽에 전해지게되었는데 정복자들은 그들의 국왕에게 새 문명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아즈텍의 연주자로 하여금 연주를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선을 보였던 무희와 연주는 유명해져 유럽 각지를 돌며 공연을 하게되면서 유럽에 흙피리가 더 널리 알려지게됩니다. 

그로인해 유럽에선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주로 흙을 다루거나 벽돌을 만들던 사람들) 흙피리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 중에서 이탈리아 부드리오 지역(에밀리아로마냐주 내에 위치해 있다)에서 벽돌공이면서 음악가로도 활동했던 주세페 도나티에 의해서 악기적으로 연구되고 개량이 됩니다. 이것이 19세기 중엽의 일입니다. 

이탈리아식 오카리나의 최초 제작자인 주세페 도나티와 그의 작품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오카리나는 1853년 도나티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식 오카리나의 최초 제작자인 주세페 도나티와 그의 작품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오카리나는 1853년 도나티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주세페 도나티는 작곡가이면서 피아노, 클라리넷, 플룻, 바이올린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였으나, 동시에 벽돌공이기도 하였습니다. 음악만으로 먹고 살기가 이렇게 어렵...


도나티가 작곡한 악보 보기

벽돌공이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보면 brickmaker 또는 potter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흙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으며 그 중에서 벽돌도 만들어 팔았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가진 도나티로선 당연히 당시에 존재했던 흙피리에 관심을 가지고 악기로서 좀더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형태는 마치 거위를 닮았다고 해서 오카리나란 이름이 붙여졌고 이후 제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현재 이탈리아 부드리오 오카리나 박물관에 보관 중인 도나티의 오카리나와 도나티의 고유 마크
현재 이탈리아 부드리오 오카리나 박물관에 보관 중인 도나티의 오카리나와 도나티의 고유 마크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오카리나의 유래였으나, 최근에 새롭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유럽에서의 흙피리는 아즈텍에서 넘어오기전 이미 신석기 시대에 독자적으로 존재했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남유럽의 작은 국가 코소보의 Skenderaj지역 내 Runik(루니크)마을은 신석기시대 유적지로 유명하였는데, 1969년, 발굴 조사에서 다양한 도자기 조각들이 발견되었고 그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약 8cm크기의 운지구멍과 취구가 달린 악기였습니다.(이 부분은 농민이 우연히 발견했다는 기사와 발굴 조사에서 발견했다는 기록 등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구조와 형태는 중국의 훈과 비슷하지만 훈은 바닥이 평평한데 반해, 이 악기는 뾰족합니다. 이 악기는 Runik Ocarina(루니크 오카리나)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 악기는 최소 5,000에서 8000년 정도 오래된 악기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후 남미의 흙피리가 유럽에 전해지기까지 유럽에선 흙피리가 이어져오지 못하였습니다.


오카리나의 종류

오카리나는 발전된 나라별, 형태별, 재료별, 운지법별 등 다양한 기준에 의해 다양한 분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크게 보면 발전된 나라별로 형태와 운지법이 함께 구분이 되어지는데 이러한 발전된 나라별로 분류를 나누어보면 이탈리아식오카리나, 영국식오카리나, 중국의 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식오카리나

이탈리아식 오카리나는 도나티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와 순차적인 운지법을 가진 오카리나를 말합니다. 

가장 대중화되어 있는 악기의 형태입니다.

(이탈리아식오카리나는 형태로 인해 오리형, T자형으로도 불리는데 형태로 인한 명칭보다는 이탈리아식오카리나로 부르는 것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흙이라는 재료 특성 상, 같은 운지체계를 가진채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악기로서 형태가 아닌 연주법을 중심으로한 분류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탈리아 부드리오오카리나와 일본 오카리나 연주자인 소지로의 오카리나
이탈리아 부드리오오카리나와 일본 오카리나 연주자인 소지로의 오카리나
영국식오카리나

영국식오카리나는 둥근 팬던트 형태에 4개의 구멍으로 한옥타브음을 연주할 수 있는 조합식 운지법을 가진 악기를 통칭합니다. 

영국의 '존 테일러(John Tayler)'라는 사람이 1964년 처음으로 영국식 4구멍 오카리나를 만들었고, '존 랭글리(John Langley)' 는 조율된 4구멍 오카리나를 제작했으며 1986년에는 서로 크기가 다른 7개의 일관적으로 조율된 둥근 형태의 오카리나를 완성 했습니다. 또한, 그는 1985년에 엄지 손가락 구멍을 추가함으로서 4구멍 오카리나의 음역을 넓혔고, 1991년에는 두 개의 통을 가진 더 넓은 음역을 갖춘 'Duet' 오카리나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식오카리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둥근형태라는 특징때문에 다양한 모양의 오카리나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형태에 상관없이 이러한 운지법을 가진 오카리나를 영국식오카리나라고 분류합니다. 

(영국식 오카리나는 Langley社의 오카리나가 가장 대표적이라 랭글리형오카리나로 불리거나, 둥근 형태로 인해 원형오카리나 로도 불리지만, 특정회사의 이름 또는 형태로 인한 명칭보다는 영국식오카리나로 부르는 것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랭글리오카리나와 다양한 형태의 영국식 오카리나
영국의 대표적인 랭글리오카리나와 다양한 형태의 영국식 오카리나

훈은 일명 아시아의 오카리나란 표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중국 대륙에서 발전된 흙피리입니다. 

고대 중국의 전쟁에서 사용된 돌맹이를 멀리 던지기 위한 돌팔매 같은 무기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이때 사용한 돌맹이는 부피가 있으면서도 멀리던지기 위해 구멍이 많이 뚫린 가벼운 돌을 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죽끈 끝에 걸친 이러한 돌을 돌렸을 때 소리가 나는 것을 보고 흙으로 속이 빈 형태를 만들어 바람을 불어 넣으니 비슷한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악기로 발전시킨 것입니다.(빈 병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부우~하는 소리가 납니다.)

이후 훈은 우리나라와 일본 등 아시아 각지로 퍼져나갔습니다.

훈은 흙으로 만들어진 악기이지만 다른 오카리나와 달리 소리를 내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오카리나가 에지(edge)방식에 의한 소리와 옹기형 구조로 인한 울림을 함께 가진 악기라면 훈은 옹기형 악기(vessel flute)의 특징이 더 강조된 악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별도의 기도가 따로 있지 않으며, 위에 뚫린 구멍으로 인해 몸체가 에지가 되기도하며 악기 전체가 울리며 음을 내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고려시대에 들어와 예종 때부터 아악기로 연주되었습니다. 보통 기와흙을 구워 만들거나, 황토에 솜을 섞어 속이 비어있는 저울추 모양이나 큰 복숭아 모양으로 만드는데, 밑을 평평하게 하고,겉은 검은칠을 합니다. 

최근 중국에선 모양과 음역적인 면에서 많이 개량되어 세련된 형태에 평균율로 조율되어 현대적인 음악도 연주할 수 있게 된 것과 달리

돈 안되는 전공 악기가 아니면 찬밥 취급하고, 개량과 발전엔 극히 보수적인 한국 국악계에선 당연히 훈에 대해서도 관심이 극히 적어 유물처럼 방치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행히 어느 중학교 음악교사인 장은렬님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나무훈, 옥훈, 도자기훈 등 다양한 재료의 시도와 함께 자체 개발한 운지법, 그리고 이러한 악기를 이용한 창작곡을 음반으로 발표하는 등의 성과는 있습니다.

장은렬님의 음반 정보보기

중국에서 발굴된 고대 훈과 개량된 훈
중국에서 발굴된 고대 훈과 개량된 훈

그 외에 수많은 제작자에 의해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운지법으로 오카리나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화음연주와 보다 넒은 음역을 연주할 수 있는 듀엣이나 트리플 오카리나, 더 넓은 음역을 위해 개량된 운지법들이 수많은 제작자들에 의해 새로 만들어지고 발전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다관오카리나들
다양한 형태의 다관오카리나들

재료에 의한 분류

재료에 의한 분류를 나누어보면 오카리나는 단순히 흙으로 구현된 관악기라는 점 이외에 오카리나만의 특징이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막혀있는 옹기형이면서 기도와 에지라는 발성 구조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이러한 오카리나의 특징을 구현한 것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면, 나무 오카리나, 종이 오카리나, 금속 오카리나, 알 오카리나, 플리스틱 오카리나, 뿔 오카리나 등등이 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재료를 가지고 얼마든지 이러한 특징을 재현하여 더욱 더 다양한 오카리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무오카리나

우선 나무는 관악기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오카리나 역시 나무로 만들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나무오카리나의 장점은 흙으로 만들어진 오카리나처럼 수분을 흡수할 수 있다는 점, 쉽게 깨지지 않는 다는 점, 흙에 비해 가볍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오카리나를 흉내낸 나무오카리나 이외에 별개의 악기로서 존재하는 악기도 있습니다. 바로 헝가리의 민속악기입니다. 헝가리의 민속악기는 그 구조가 오카리나처럼 막혀있는 관 형태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본에선 이 악기를 나무오카리나란 의미로 코카리나라고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나무오카리나는 재료의 특성 상 흙으로 만들어진 오카리나에 비해 좀 더 가벼운 소리를 냅니다.

미국의 Charlie Hind씨가 만든 나무오카리나와 헝가리의 민속악기가 원형인 일본의 코카리나, 한국의 고현일님이 만든 나무소리오카리나
미국의 Charlie Hind씨가 만든 나무오카리나와 헝가리의 민속악기가 원형인 일본의 코카리나, 한국의 고현일님이 만든 나무소리오카리나
종이오카리나

종이오카리나는 전문적인 연주용 악기라기보다는 공예적인 측면에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종이를 가지고 직접 오카리나를 만들어봄으로써 오카리나의 소리나는 구조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특성 상, 종이의 두께가 어느정도 두꺼워야 진동이 상쇄되지 않고 소리가 잘 납니다.

금속오카리나

관악기를 만드는 주재료 중 하나인 금속 역시 오카리나를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금관악기처럼 오랫동안 수많은 연구를 거듭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현의 시도는 있었지만 아직까진 완성도 있는 금속오카리나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금속으로 구현된 이탈리아식오카리나와, 피치 조절용으로 추정되는 피스톤이 달린 금속오카리나
금속으로 구현된 이탈리아식오카리나와, 피치 조절용으로 추정되는 피스톤이 달린 금속오카리나
알오카리나

오카리나가 막혀있는 옹기형 악기이다보니 알은 오카리나를 만들어보는데 적격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료 특성 상 실험적이며 공예적인 측면이 큽니다.

뿔오카리나

뿔오카리나는 오카리나로 분류하기 이전에 원래 존재했었던 겜스호른(gems horn)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겜스호른이란 뿔의 내부를 파내 만들어진 피리입니다. 그러나 구조가 오카리나와 마찬가지로 막혀있는 구조이지만 막혀있는 관악기가 오카리나만의 고유 특성이라고만은 볼 수 없기에 겜스호른으로 따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입니다. 

물론 겜스호른이 아닌 오카리나를 구현하기위해 일부러 만들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뿔오카리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겜스호른의 모습과 단면도. 오카리나와 구조가 흡사하다.
겜스호른의 모습과 단면도. 오카리나와 구조가 흡사하다.
플라스틱오카리나

플라스틱오카리나는 플라스틱이라는 대량생산성의 특징을 가진 재료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며 발전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겐 플라스틱오카리나가 지급되기도 하였으며, 일정한 품질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제작단가를 무척 낮출 수 있는 점으로 인해 오카리나의 플라스틱 구현은 예전부터 국내외 적으로 많이 시도되고 존재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3D스캔등의 기술을 통해 보다 완성도 높은 플라스틱오카리나가 만들어지고 있으나 그러한 제품들 대부분이 초기에는 기존의 개인제작자들이 오랜 기간 연구하고 구현해낸 완성도 높은 제품들을 카피한 것들이 많아 제작과정 상의 양심의 문제가 거론되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교육용 시장을 노린 제조사들의 난립과 초기의 비싼 몰드 제작비용으로 인해, 다른 제품의 몰드를 돌려쓰는 경우도 많아 제품명과 겉모습만 다른채 내부 구조는 동일한 경우도 많습니다.(어찌보면 상향평준화?)

또한 플라스틱 재료의 특성 상 수분을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이슬맺힘 현상으로 인한 기도 막힘 증상 등으로 인해, 일부러 수분을 흡수하도록 만들어지는 오카리나에 비해 연습이나 연주 시 불안한 요소가 있으며, 오카리나의 본래 음색을 구현하기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저렴한 가격과 적은 파손의 위험이라는 장점도 있으나 이러한 플라스틱오카리나로 인한 대중화는 기존의 오카리나를 발전시켰던 개인 제작자들의 생존의 위협과 악기로서의 가치 및 인식의 하락, 무분별한 카피로 인한 연구 성과의 도용 등의 문제가 심각한 실정으로 인해 개인 제작자들과 오카리나매니아들 사이에선 결코 반가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지 않습니다.


악기적 성능이나 완성도로만 보자면, 대략 2만원 내외의 제품들은 오히려 어설픈 수제오카리나들보단 낫기도 하며(일정한 품질로 대량 생산되므로), 문방구에서 몇 천원 수준으로 팔리는 제품들은 음정의 부정확성 및 음색의 형편없음으로 인해 안사니만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주로 초등학생 등을 대상으로한 교육적 목적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적 환경에선 플라스틱 리코터와 같은 높은 효용성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지급된 플라스틱오카리나와 교본, 그리고 장난감 오카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지급된 플라스틱오카리나와 교본, 그리고 장난감 오카리나

한국으로의 전래와 발전

그동안 한국에 오카리나가 처음 알려진 계기가 1980년대 KBS에서 방영한 일본NHK제작의 다큐멘터리 "대황하"를 통해서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대황하 다큐멘터리의 OST를 일본의 오카리나 연주자인 노무라 소지로가 담당하면서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오카리나 연주와 소리가 전파되었지만, 이것이 한국에 오카리나 처음 알려진 계기는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이미 오카리나는 한국에서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기록 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931년 6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
1931년 6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

1931년 6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연회전문학교학생회 주최 학예부후원의 제1회 예술강연회가 20일 저녁 8시에 열릴 예정인데(20일 낮에 미리 기사가 쓰이고, 21일에 신문을 발간. 그 사이에 공연이 열린 것으로 이해하면 될듯합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황재경"이란 사람이 "만하의 장미"란 곡을 오카리나로 독주를 하기로 되어있습니다.
이 "만하의 장미"는 "여름의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라는 곡으로 보여집니다. 관련 링크

이 기사 이외에도 1933년, 1937년의 기사에서도 오카리나 연주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1958년도의 기사에선 초등학교리듬밴드에 오카리나가 포함된 사실도 볼 수 있어서, 그 때 이미 초등학생들에게 오카리나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대황하로 다시금 오카리나 소리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진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듯 합니다.


대황하 방영을 계기로 국내에선 처음듣는 아름다운 악기소리에 반한 사람들이 그 악기가 무엇인지 찾게되었고, 그 것이 오카리나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일본의 오카리나를 구입하게되지만, 적극적인 연주활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서로 교류를 하지 못한채 오카리나들은 서랍속에서 잠들게 됩니다.

이후, PC통신 시대가 열리면서 통신서비스를 통해 오카리나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서로 온라인을 통해 교류를 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다시금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이어진 인터넷 보급에 힘입어 다양한 오카리나 웹사이트들이 생겨나고, 오카리나마을도 인터넷을 기반으로한 전국적인 동호회로 발전하게 됩니다. 

1999년 4월 13일자 경향신문 매거진X에 실린 기사
1999년 4월 13일자 경향신문 매거진X에 실린 기사